전통적으로 연예인들의 출두패션은 검정뿔테 안경이었다. 

2014년 협박사건 증인으로 법원에 출석한 이병헌, 같은 해 5월 성매매 혐의의 성현아, 2013년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의 이승연 모두 그랬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1월 해외원정 도박혐의로 경찰에 출두한 신정환, 같은 해 7월 병역기피 혐의의 MC몽도 그랬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2015년 '땅콩회항' 항소심 공판에 나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평소 안 쓰던 검정뿔테 안경이었다. 

왼쪽 위 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병헌, 성현아, 이승연, 조현아, MC몽, 신정환 /사진=머니투데이
왼쪽 위 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병헌, 성현아, 이승연, 조현아, MC몽, 신정환 /사진=머니투데이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검정뿔테 안경은 모범생 같은 이미지를 준다. 나쁜 짓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꼬장꼬장한 이미지도 준다. 그래서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달라'는 무언의 표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2년 워싱턴 형사법정에서 총으로 5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흑인남성 5명이 모두 짙은 색 뿔테 안경을 쓰기도 했다. 평소에도 안경을 쓰느냐는 검사 질문에 모두 평소에는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도수도 없는 소모품이었던 것이다. 흑인 용의자들이 뿔테 안경을 쓰면 더 정직하고 덜 위협적으로 보인다는 미국 범죄심리학회의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 최근 아이돌의 출두패션은 완벽한 수트다. 

최근 버닝썬 관련 의혹으로 경찰에 출두한 아이돌들은 '연예인 출두패션 = 검정뿔테 안경'이라는 공식을 깨버렸다. 승리는 몸에 꼭 맞게 '핏'을 세운 감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고 경찰에 나왔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꽉 끼게 맸다. 바로 앞에서 본 기자들에 따르면 화장도 꽤 짙게 한 것 같다는 평가다. 예능무대나 행사에 나온 것 같은 차림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승리 /사진=머니투데이
승리 /사진=머니투데이

성관계 불법 촬영 및 유포, 경찰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도 수트 차림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역시 하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도 맸다. 특히 최종훈은 뒷짐 진 채 기자들 질문에 답을 하고 자신이 출석한 사진이 SNS에 올라오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준영 역시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하얀색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이었다. 
 
최종훈(좌)과 정준영 /사진=머니투데이
최종훈(좌)과 정준영 /사진=머니투데이


'완벽 수트'에 화장까지…어떤 심리일까?


검정뿔테가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달라'는 표시로 해석될 수 있다면 마치 행사에 나온 것 같은 아이돌의 완벽한 수트 출두는 어떻게 봐야할까?

보통 정치나 경제범죄가 아닌 이상 피의자가 검찰이나 경찰에 출두할 때면 덥수룩하게 면도도 않고 모자 꾹 눌러쓰고 점퍼 입고 출두하는 것이 일반적 모습이다. 더욱이 이들이 받고 있는 혐의는 죄질이 극히 나쁜 성매매 알선, 성관계 불법 촬영과 유포, 마약 투약 등의 혐의가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마치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 같은, 비주얼 구겨지면 안 된다는 것 같은 차림이다. 남자들이 완벽하게 차려 입을 때는 주로 당당하게 보여야겠다고 생각될 때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죄의식이 없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스무 살도 안 돼 아이돌 스타가 되고 그래서 자아보다 스타의식이 먼저 형성된, '아이돌 괴물'이 돼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봤다. 전문가들 의견은 엇갈렸다.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예의를 보여준 것"(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

먼저 곽 교수의 견해를 정리하면 이렇다.

화려한 빅뱅의 콘셉트를 생각해 볼 때 승리가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것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비장한 태도로 보인다. 오히려 점퍼 입고 모자 쓰고 나왔다면 예의가 없어 보였을 것이다. 정장을 입은 것은 국민들과 조사당국에 예의를 갖춘 나름의 표현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승리가 화장을 하거나 당당한 태도로 비쳐진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는 상황에서 연예인으로서 그간 대중 앞에서 보여 온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려 한 것 아니겠는가. 당당하게 보이는 옷차림과 태도가 오히려 수사에 제대로 응하겠다는 다짐이나 각오로 읽혔다. 항상 깔끔한 모습을 보여 온 연예인이었던 만큼 너무 나쁘게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준영이 머리를 묶은 것도 정중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안희정 전 경기기사가 처음에 패딩을 입고 출두했을 때 굉장히 거슬리지 않았나. 공권력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미성숙과 불감증의 표시"(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임 교수의 견해는 곽 교수의 견해와 달랐다.

보통 정치나 경제범죄 피의자는 의도적으로라도 초췌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연예계 활동을 해 온 승리 등은 이번 사안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연예활동을 하다 보면 외부와 소통이 차단돼 섬 같은 곳에서 살게 된다. 사회적인 법규나 일반적인 도덕적 잣대에 대해 제대로 학습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대중 앞에 설 때는 당연히 좋은 옷 입고 화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도 같다. 다만 승리 등이 악의적으로 뻔뻔한 태도를 보이려 했던 것은 아닐 수 있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미성숙한 측면이 더 큰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과연 이들의 완벽 수트 출두패션은 성실히 조사 받겠다는 아이돌 나름의 방식일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유명세를 타면서 죄의식 자체를 상실해버린 아이돌 괴물의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