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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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끝을 볼 겁니다. 변호사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동업자에 대해 횡령죄 형사고소를 했지만 무혐의처분을 받은 박 사장. 사실 이 고소는 법리상으로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박 사장은 도저히 분을 이기지 못했다. 특정 사업아이템을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가 동업자가 살며시 독립적으로 그 사업을 진행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업자가 그렇게 한 데에는 박 사장의 우유부단함과 능력 부족이 큰 몫을 차지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동업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상당기간 동업자에 의해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형사적으로는 고소를 제기했는데 무혐의처분을 받게 되자 다시 이의절차(항고)를 제기했다. 항고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박 사장은 그럴 경우 다시 이의(재항고)를 하자면서 전의를 불태운다.

민사적으로 동업자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을 요청했다. 딱히 손해를 봤다고 보기 어렵지만 정신적 피해액을 5억 원으로 정해서 청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에 내는 인지대(印紙代)만 해도 상당한데 금액에는 상관하지 말고 제출해 달라고 한다.

나아가 박 사장은 예전에 동업자가 세금을 탈루한 것 같다면서 국세청에 증여세 포탈을 이유로 동업자에 대한 탈세신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웬만하면 국세청 신고는 하지 말 것을 권유했으나 박 사장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이런 의뢰인이 한 둘이 아니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도저히 상대방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철저히 상대를 파괴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보게 된다.

굴묘편시(掘墓鞭屍).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을 한다는 뜻으로,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복수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를 빼놓을 수 없다. 오자서는 복수의 화신이지만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강직한 인물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3억 중국 인구 중에 10억 명이 그를 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 오사는 태자 건의 스승이었다. 초나라의 소부(少傅)였던 비무기(費無忌)가 오사를 시기하여 평왕에게 참소하자 평왕은 그 참언을 듣고 오사를 죽이려 한다. 오사를 옥에 가둔 평왕은 후환을 없애려 그의 두 아들을 부르라한다. “아들을 오게 하면 살려 주겠다”는 꾐에 오사는 이렇게 말한다.

“큰아들(상)은 효자라 부르면 올 것이고, 둘째 아들(자서)은 야무진 아이라 오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장남은 부름대로 오고, 오자서는 “가봤자 세 부자가 모두 죽을 것”이라며 도주한다.

오나라로 망명한 자서는 오왕 합려를 보좌하여 강국으로 키운 뒤 초나라를 함락시킨다. 드디어 복수의 때가 왔으나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평왕은 생전에 오자서의 보복을 예견하고 자신의 무덤을 깊은 연못 속에 만들고 묘의 조성작업에 종사한 일꾼 500명을 모두 죽여 버린 까닭에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작업에 종사했다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노인이 알려주어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찾아낸 뒤 시신을 파내어 쇠 채찍으로 300번 내려침으로써 분을 풀었다. 이 일을 두고 친구인 신포서가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이 있느냐”고 나무라자 오자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에 역행하는 수밖에 없다”(일모도원·日暮途遠)고 답한다. 여기서 일모도원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그것이 또 다른 업(業)이 되었을까. 오자서는 훗날 합려의 아들 부차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죽으면 눈을 도려내 문 위에 걸어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당부한 뒤 자결했다. 비록 선대의 원(怨)은 풀었다지만 저 또한 원을 품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때로는 복수를 향한 일념이 삶을 지탱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친 복수심이나 적개감은 스스로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 어느 순간 그 마음을, 그 사람을 놓아줘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남에게 원한을 사면 그 사람은 기를 쓰고 나를 파멸시키려 한다. 특히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은 절대 남에게 원한을 사면 안 된다. 복수심이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 원(源)인지는 수차례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낀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