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혁신을 이끌어 내는 관찰의 대상은 특별할 필요가 없다. 일상 속의 사물, 내 주변의 인물과 동식물 심지어 해와 비까지.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을 비범한 눈으로 바라볼 때 그것은 혁신적 창조의 시발점이 된다.


미국 시트콤 ‘사인필드’는 ‘전설’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역대 최고의 코미디 시리즈다. ‘프렌즈’보다 먼저 1분당 100만 달러 수익을 올린 코미디이자, 주인공 제리 사인필드를 (지금까지도) 미국 연예인 중 최고 부자 중 한명으로 만든 드라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인필드는 ‘심슨 가족’과 함께 TV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쇼로 꼽힌다.


사인필드에는 주인공들의 연애도, 임신도, 결혼도 없고 그래서 갈등도, 감동도 없으며 9개의 시즌(1989-1998)동안 캐릭터들의 성장 같은 것도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속에 벌어지는 해프닝과 헛소리가 전부다. 그러나 이 ‘맹탕’같아 보이는 드라마의 위대함은 그 사소함을 가지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서늘한 공감을 뽑아내는 데 있다.


넷플릭스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는 주인공 세 명이 식당에서 자리를 기다리며 얼마나 속이 뒤집어지는지,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오래 하는 사람 뒤에 서 있을 때 얼마나 울화가 치미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누구나 겪을 상황을 현미경처럼 관찰하는 듯한 스토리가 펼진다.


게다가 주인공 사인필드의 극 중 직업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그는 극중의 에피소드를 관찰한 내용으로 다시 무대에서 관객을 웃긴다. 메타 관찰로 만든 메타 유머라고나 할까. 그런 혁신적 관점 덕분에 공중전화가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이 사인필드를 넷플릭스가 2021년부터 다시 방영 중인데 뉴욕타임스가 석 달 전 기사에서 “종영 후 25년된 오늘날까지도 공감을 자아낸다”는 찬사를 바칠 정도로 동시대적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평범하다 못해 하찮은 소재들이다. 세탁기 속에서 춤추는 듯한 빨래들, 늘 사라지고야 마는 양말 한 짝, 오래전 한번 만난 여자의 생각나지 않는 이름, 속을 알 수 없는 반려동물... 그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는 비범한 눈이 잡아내는 웃음의 포인트. “개의 얼굴에 바람을 후 불면 화를 내는 거 아세요? 그런데 차를 타면 창밖 바람 맞으려고 얼굴을 내밀죠.”


코미디 연기자의 남다른 관찰력 하나를 더 보자. 최근 천재적인 인턴기자 연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주현영. 그의 연기를 보며 도대체 어떤 눈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기에 저런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를 그려낼 수 있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쿠팡


데뷔전 학생 때는 친구들을,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할 때는 손님들의 행동을 즐겨 관찰해 왔다는 그는 “사람들이 체면 차리고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어느 순간 들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일어나는 사람의 표정 변화나 제스처, 그런 걸 발견했을 때 되게 짜릿하죠. 그런 걸 쌓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겠다 싶은 확신이 생겨요”라며 확실히 똑똑한 관찰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그가 얻은 통찰은 감정이입을 통한 관찰이다. ‘내가 어떤 걸 흉내내 보여줄까’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할까’ 그 사람의 성격과 심리를 대신 가져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소극적이고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인지. 그에 따라서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서 입이 잘 안 움직이기도 하고 과하게 움직이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지’를 들여다보면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아레나 옴므.2023.8)


대상인물의 사소한 행동과 성격을 세밀히 읽어내고 그것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나의 창조적 결과물을 생산해 내는 것, 더 나은 고객경험을 추구하는 기업의 목표와 다르지 않다. 단순히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향한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고객 경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요즘 MZ세대들이 ‘일급 회사’의 기준으로 삼는 허먼 밀러 에어론 의자의 혁신 역시 세심한 고객경험을 읽어낸 결과다. CEO 브라이언 워커가 꼽는 혁신의 키워드는 역시 ‘관찰’이다. “우리는 소비자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소비자 조사의 문제점은 소비자는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다면 실패하지 않고 평범한 수준을 유지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혁신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 채 남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을 똑같이 답습하게 될 겁니다."


허먼밀러 의자에 앉아 있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주/출처=메타


그래서 이들은 실제 의자를 사용하는 사무실로 들어가 꾸준히 관찰했고 소비자들이 의자를 앉을 때 기존 의자에 사용되는 쿠션 때문에 땀이 배어 자주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 결과 등받이를 그물망 형태로 혁신한 ‘의자계의 샤넬’ 에어론이 탄생했다. (조선일보 Weekly Biz.2011.01.15.)


중국을 대표하는 이노베이터 장 루이민이 하이얼을 세계적인 혁신기업으로 끌어올린 성공 요인 중 하나 역시 고객 관찰이다. 루이민은 정기적으로 엔지니어들을 시장으로 보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게 했다. 이들은 농촌 지역에서 하이얼 세탁기로 고구마를 씻는 것을 관찰했다고 보고했다. 루이민은 채소 전용 세척코스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또 미국에 간 엔지니어들은 소형냉장고 두 대 위에 합판을 얹어 책상으로 사용하는 학생을 보고했다. 하이얼은 이에 접이식 책상이 달린 냉장고를 내놓았다. 아이스크림이 너무 꽝꽝 얼어 먹기 불편하다는 고객의 경험을 접수해 덜 어는 냉동고도 내놓았다. 관찰로 통찰을 얻고 이것이 혁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크리에이터의 생각법』.2018)


하이얼 가전매장/출처=하이얼


결국 꾸준히 관찰하고 남다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아야 한다. 일상속에 깃든 단순함은 혁신을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프리드버그가 출근길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놓치지 않은 것처럼. 구글에서 일하던 그는 출퇴근길에 자전거 대여점을 늘 지나갔다. 그가 관찰한 사실은 비가 오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 이 당연한 현상을 보고 그는 ‘날씨에 영향을 받는 농업과 같은 업종들에 도움이 되는 날씨 데이터를 제공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클라이밋 코퍼레이션(Climate Corporation)을 창업해 날씨보험, 농업데이터 플랫폼 등을 내놓았다. 회사는 몬산토에 11억 달러에 매각돼 신흥 농업 기술 분야에서 최초의 유니콘이 되었다.


마침 비가 내리는 장마철, 오늘도 우리는 출근한다. 쏟아지는 빗줄기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눈으로 하늘과 주변을 바라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