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조차 반대하며 주민투표까지 했다가 서울시장을 내놓았던 미래통합당 오세훈 전 시장은 기본소득을 하자고 하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주장에 대해 우파적 기획에 함몰됐다고 비판한다.

이런 혼란의 이유는 무엇일까? 각자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좌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목적과 방식이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현재 소득과 상관없이,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조건도 달지 않고, 어디에 쓰든 간섭하지 않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해서 지급하는 소득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 극대화가 정치의 목표”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기본소득은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에게도 지급되는 보편적 복지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봐도 기본소득 주장은 좌파에서부터 가장 우파까지 다 걸쳐있다.

토마스 페인(좌)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토마스 페인(좌)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토마스 페인에서 하이에크까지
기본소득의 선구자라 불리는 토마스 페인은 18세기의 체 게바라, 영국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토지 정의’에서 “공유자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배당은 시민의 권리”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는 시민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한 재산이 있으며, 시민들은 이 공유자원에서 나오는 이익을 동등하게 배당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그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배당금(기본소득)의 재원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자유주의의 사상적 원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역시 기본소득을 옹호했다. 그는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것은 자신을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 선 이하로 생활 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자유주의경제학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도 최저생계비보다 적게 버는 사람에 대해 그 차액만큼 지급하자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논의 본격화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IT 회사로의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로봇과 인공지능, 자동화의 일자리 대체가 가시화하면서다.

기본소득 주창자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는 “20세기 ‘대량생산-대량소비’ 모델이 이제 ‘소수의 무제한 생산–소수의 소비’로 질주하고 있다. 일자리가 소수화하고 이윤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고 우리의 구매력은 줄고 있다”며 “그렇다면 정부가 보호하는 기술 특허로부터 발생하는 수익 일부를 시민에게 나눠줘 사회 전체가 기술의 과실을 향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9일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병원에서 로봇기업 '조라봇'(ZoraBots) 직원이 의료용 로봇 '크루저'(CRUZR)를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afp
지난 5월 29일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병원에서 로봇기업 '조라봇'(ZoraBots) 직원이 의료용 로봇 '크루저'(CRUZR)를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afp

특히 최근 수년 간 실리콘밸리 중심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했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휴즈는 “페이스북과 아이폰 경제의 풍요는 대중에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자동화와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스라 창업자는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노동이 아닌 더 재미있는 일을 할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기본소득) 이외 다른 선택이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말했고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 역시 기본소득 지지자다. 

또 뉴욕타임스 IT 칼럼니스트 파하드 만주는 “인간이 쓸모없어진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기본소득이 그 해답이다. 낮은 임금 받으며 일하는 대신 지식을 쌓으며 사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테크노 마르크시스트(Techno-Marxist)로 불리기도 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7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점을 크게 2가지다. 역사적으로 그랬듯이 ‘복지 구조조정을 위한 기본소득’의 보수 버전, ‘복지 확대를 위한 기본소득’의 진보 버전이다. 최근에는 진보내에서도 기본소득 대신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먼저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 ‘복지 구조조정’을 위한 기본소득

미래통합당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 개념이다. 복잡한 복지체계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고 간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 수를 줄여 작은 정부가 가능하고, 근로 유인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근로 여부와 상관없이 주기 때문에 월급을 받기 위해 일도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선별적 복지가 줄어 복지국가의 기능이 줄어드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역시 음의 소득세를 도입하는 대신 기존 사회보장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최근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바로 이 경우다. 핀란드의 중도우파 정부는 2017년 1월부터 25~28살 실업자 가운데 2,000명을 무작위 선정해 2년간 매달 560유로(68만 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대신 이들에게는 기존 실업급여와 공공부조를 중단했다. 핀란드 정부는 “복지를 추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개념이다. 온갖 수당이 뒤엉켜 통제가 어려워진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실업자의 근로 의욕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2019년 1월 실험이 끝났는데 보수의 관점에선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들의 고용률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기본소득 수급자와 비 수급자의 취업률은 거의 같거나 기본소득 수급자가 2% 높은 정도였다. 핀란드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지급되는 재정적 인센티브와 취업률 사이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눈에 띄게 행복해졌다고 한다. 자신감, 집중력, 건강 수치 등이 개선됐고 불안감이나 스트레스 등의 부정적 수치는 훨씬 낮게 나타났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이 실험을 꼭 실패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2016년 스위스 제네바 플랭팔래 광장에서 기본소득 지급 안건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소득이 보장되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사진=AP 뉴시스
2016년 스위스 제네바 플랭팔래 광장에서 기본소득 지급 안건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소득이 보장되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사진=AP 뉴시스

2. ‘복지 확대’를 위한 기본소득

이재명 지사 등이 주장하는 개념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도입해도 기존 복지는 손대지 않는다”며 “추가되는 새로운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복지 확대는 결과적으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은 기술혁명으로 공급은 충분하나 일자리와 소비 부족이 고착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춤형인 저비용 고효율의 신경제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의 재원에 대해 “1년에 2번 50만원은 기존 예산으로 충분하지만, 그다음 단계로 국민들이 동의하면 증세나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등으로 순차적으로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업은 국민이 제공한 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며 “기업은 빅데이터 사용료를 지불할 의무가 있고, 이것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알래스카, 스위스, 아프리카의 케냐가 이 경우에 속한다. 알래스카는 석유 자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만들어 1982년부터 1년 이상 거주한 70만 명 주민에게 배당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지급액이 1인당 연 1,606달러(194만 원)로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빈곤율이 낮고 평등하다.

2015년 국민투표에서 반대 76%로 부결이 되긴 했지만, 스위스가 2015년 도입하려던 기본소득 역시 복지를 확대하는, 시민의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이었다. 매달 조건 없이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300만 원), 아동에게 625스위스프랑(75만 원)을 지급하자는 것이었는데 당시 헌법 개정을 청원한 12만 명 시민들은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정책이 아니라 우리가 시장에서 거래대상으로 전락하지 않을 권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급 기간과 재원 마련 등 세부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부결됐다. 하지만 당시 설문조사에서 국민 69%가 “향후 기본소득과 관련한 또 다른 국민투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31%가 “30년 안에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으로 응답했다. 

사진=bloomberg
사진=bloomberg

케냐는 정부가 아니라 미국 자선단체 ‘Give Directly’ 주도로 실험이 이뤄졌다. 2016년 10월 220명에게 12년간 매달 2,280실링(2만5,000원)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케냐의 주민 평균소득이 일주일 500~1,000실링이다. 이 실험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인데 주민들은 기본소득으로 식료품 구매, 학비 등 기본생활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소득을 불려 나가고 있다. 공짜로 주어지는 돈 때문에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주민들은 기본소득으로 염소를 사서 키웠고, 염소 새끼들을 팔아 소를 사서 키우기 시작했다. 

3. 복지 확대를 위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로서 바람직한 이상형이긴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재정이 소요되고 경제, 사회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많다. 재정의 우선순위를 정해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 단계로 전 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박 시장은 “24조 원의 예산이 있다면 성인 인구 4,000만 명에게 월 5만 원씩 나눠주는 것보다 실직자 200만 명에게 100만 원씩 나눠주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박 시장은 또 “기본소득은 끼니가 걱정되는 실직자도 매월 5만 원, 매월 10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도 매월 5만 원을 받는 제도”라며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가 훨씬 더 정의롭다”고 말한다. 김부겸 전 의원 역시 “기본소득에 앞서 고용보험 확대가 급선무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서 더 절실한 것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라고 말했다. 

사진=Give Directly
사진=Give Directly

다만 전 국민 고용보험제 주장도 두 가지로 나뉜다. 정부는 예술인, 학습지 교사와 보험설계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에 대해 하나씩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단계적 추진론이다. 

하지만 전면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만만찮다. 고용보험이 노사가 절반씩 보험료를 내는 제도인데 예술인,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해 사용자가 누구인지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고용보험의 사용자 요건을 없애고, 사용자가 몇 명을 고용했는지가 아니라 소득에 따라 고용보험 기여금을 내도록 해서 자영업자를 포함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안정한 취업자들 대상의 소득보장이 이뤄지면서 장기적으로 전 국민 대상의 기본소득에 도달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기본소득은 누가, 어떤 의도로 그 개념을 사용하는지를 잘 봐야 한다. 미래통합당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을 진보적 의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보수적 의제이다. 동시에 전 국민 대상의 ‘보편’이 아니라고 해서 보수적 의제라 할 수 없다. 취약계층인 불안정 취업자에 대해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것은 복지 확대를 위한 기본소득만큼이나 진보적 의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