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기업의 불문율이었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환경을 파괴하며 녹지를 개발하려 하자 ‘악마’라고 비난한 파타고니아는 정말 예외적인 사례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AT&T, 구글의 수장들은 물론 심지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까지 “인종차별에 침묵해선 안 된다”며 트럼프를 비판하고 있다. ‘CEO 행동주의(CEO activism)’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5월 30일(현지시간) 구글 메인 화면](https://menu.mt.co.kr/ttimes/img/202006/editor/2020060415297750981_2.jpg?5935)
5월 30일(현지시간) 구글 메인 화면
팀 쿡 애플 CEO는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직시해야 하고 미국의 분열된 단면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검은 리본과 함께 ‘우리는 인종 평등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적힌 구글 첫 화면을 캡처해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분노와 애통함, 두려움을 느끼는 이는 당신뿐만이 아니다"고 적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역시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모든 걸 바꿔야 한다"며 "MS는 낡은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트위터가 트럼프의 트윗에 경고와 함께 원문을 가린 데 이어 스냅챗 역시 트럼프 계정을 상위 노출하지 않겠다면서 “우리는 인종 폭력과 불의를 키우는 목소리를 증폭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키 영상 캡처](https://menu.mt.co.kr/ttimes/img/202006/editor/2020060415297750981_3.jpg?5405)
나이키 영상 캡처
아예 캠페인을 만들어 인종차별 반대와 트럼프 비판에 나선 기업도 있다. 나이키는 대표 슬로건인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을 ‘돈 두 잇’(Don’t do it)으로 바꿔 캠페인 영상을 만들었다.화면에는 “단 한 번이라도 하지 마라(Don’t do it)” “미국에 아무 문제가 없는 척하지 마라”, “인종차별에 등 돌리지 마라” 등의 문구가 나온다. 영상은 트위터에서 무려 722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경쟁사인 아디다스조차 이 영상을 공유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 함께 변화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회사도 있다. 유튜브 최고사업책임자(CBO)인 로버트 카인클은 1,200여 명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지난 2일 하루 동안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며 “인종 차별을 없애는 일에 집중하라”며 시위 동참을 독려했다. 또 넷플릭스는 트위터 계정에 "침묵하는 것은 공모하는 것과 같다"고 밝혔고 유니버설 뮤직, 소니 뮤직, 워너 레코즈 등 대형 음반사들도 지난 2일을 '블랙아웃 화요일'(Blackout Tuesday)로 명명하고 하루 동안 업무를 중단하기도 했다.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反)트럼프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afp](https://menu.mt.co.kr/ttimes/img/202006/editor/2020060415297750981_4.jpg?8285)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반(反)트럼프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 /사진=afp
이처럼 서부의 IT 회사들을 중심으로 트럼프 비판에 주저하지 않는 것은 이들 회사에 이민자들이 많고 이들의 성향이 진보적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자 마크 안데르센은 “실리콘밸리는 부자 동네라서 공화당원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정반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캘리포니아의 힐러리 지지율은 61.5%였다.
그리고 또 하나 이유는 고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소비의 주축으로 등장한 밀레니얼세대(22~37세)와 Z세대(18~21세)는 정의와 사회 참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소비에 있어서도 가치 소비와 윤리 소비를 주도하고 있다. 이윤보다 환경을 중시하는 파타고니아에 이들 세대가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젊은 미국인일수록 기업의 사회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회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https://menu.mt.co.kr/ttimes/img/202006/editor/2020060415297750981_5.jpg?7314)
이처럼 기업들이 기존의 불문율을 깨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미국 경제를 IT 대기업들이 주도하게 됐다는 것, 그리고 고객이 달라졌다는 것 때문이다. 고객과 직원들이 정의와 가치를 중시하게 되면서 기업도 따라가게 됐다.
그래서 기업이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칼럼에서 “인종차별은 해결돼야 하며 이는 정의의 문제”라는 AT&T의 랜달 스티븐슨 회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비즈니스 리더들이 정치 개혁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줘 미국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