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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충격을 받은 후 겪는 심리적 · 정신적 장애를 심리학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 부른다. 드림 시어터의 노래 'The Enemy Inside'는 이를 잘 묘사하고 있다. 

These suffocating memories
이 숨 막히는 기억들이
Are etched upon my mind
내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져있어
And I can't escape from the enemy inside
나는 내 안의 적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어

또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학교 선생을 하다가 북한 의용군에 끌려갔던 오빠가 1·4 후퇴 직전에 도망쳐온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그 몸으로 전선을 돌파하고 먼 길을 걸어 집까지 돌아올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만큼 몸이 못 쓰게 된 건 약과였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조금도 기쁜 기색이 없었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태어난 아들을 보고도 안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렇다고 무표정한 것하고도 달랐다. 시선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작은 소리에도 유난스럽게 놀랐다.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은 무슨 소리를 해도 바뀌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도 그를 안정시키진 못 했다. 밤에는 바람 소리, 쥐 부스럭대는 소리에도 놀라 한잠을 못 잤다. 어디를 어떻게 무슨 꼴을 당하며 왔기에 그 꼴이 되었을까. 죽기를 무릅쓰고 사선을 넘은 무용담도 있으련만 말하지 않았다. 그런 흔적도 안 보였다.

오빠는 심한 피해망상을 앓고 있었다. … 풀에 놀라 머리 먼저 아무 데나 쑤셔 박고 덜덜 떠는 증세까지 새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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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고문, 재해, 사고 등을 경험한 후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 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질환이다. 비슷한 외상을 또 입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과도하게 예민해지고 방어기제가 발동하며 막연한 피해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외상(trauma)을 경험했다고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외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회복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다는 견해를 제기한다.

긍정심리학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 교수는 "트라우마는 '외상 후 장애'가 아니라 '외상 후 성장(PTGㆍPost traumatic Growth)'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해도 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극복한다. 단지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통제 불가능한 충격 앞에서 그저 손을 놔 버리는 것이다."

셀리그만 교수는 오랫동안 '학습된 무력감'에 관해 연구했다. 학습된 무력감이란 어떤 충격을 받은 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벗어나려는 의지를 상실하는 것을 말한다.

"견디기 힘든 소음을 제어할 수 없는 폐쇄 공간에 하루 동안 갇혀 있던 사람 중 70%가 이후 제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줘도 소음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만 뻗으면 소음을 줄일 수 있는 버튼이 있는데도 누르려 하지 않았다. 무력감을 학습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정신적 충격 그 자체가 아니다. 극복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수십 년 연구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대부분 사람은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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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셀리그만 교수는 과거의 충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될 수도 있지만, 외상 후 성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극심한 충격을 받으면 우울과 불안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처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한쪽 끝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사람들이다.

가운데 분포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초반에 우울과 불안 증세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후 충격을 받기 전 상태로 돌아간다. 역경에 대처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을 숙지한 사람들이다.

다른 한쪽 끝에는 단순한 회복을 넘어 더욱 더 강인해지고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 부른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극심한 불안과 무기력증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은 1년도 안 돼 이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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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셀리그만 교수는 이렇게 조언한다. 

"초점을 앞에 놓인 우울이나 불안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후 다가올 회복의 순간에 둬야 한다. 당장의 우울은 미래를 방해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관찰자 관점에서 이 상황을 본다고 가정하자. 당신이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위로할 때를 생각해 보라. 놀랍도록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관찰자 시선으로, 즉 객관적으로 자기 상황을 보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고통을 겪은 후에도 마찬가지다. 트라우마를 가져다준 사건들에 대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는 새로운 삶의 원칙을 만들어 준다. 회복탄력성, 즉 회복력이 큰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더 발전적인 원칙을 만들어낸다."

정리해보자. 고통의 순간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갈 것인지, 외상 후 성장으로 갈 것인지 그 선택은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내 결정권을 타인이 좌지우지하게 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