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민을 구제하는 ‘북유럽 방식, 미국의 방식’

자본주의 모델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타격이 가장 심한 곳이 미국과 유럽. 경제적 충격 역시 가장 크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양 대륙 정부의 위기에 처한 국민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똑같이 정부가 돈을 써도 미국이 기하급수적으로 해고된 실업자들에 대해 사후적으로 실업수당 등으로 소득을 보전한다면, 유럽은(특히 북유럽) 실업 자체를 최소화하는 정책이다. 

/그래픽=박의정 디자이너9

일터가 멈추면 미국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지만, 유럽의 노동자들은 일터가 멈춰도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 노동자들은 실업수당으로 버티고, 유럽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버틴다. 개인의 운명이 국가 정책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런 차이는 양 대륙의 자본주의 모델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북유럽이 고부담‧고복지 모델이라면, 미국은 해고가 자유로운 저부담‧저복지 모델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이 고통을 (세금 등 재분배정책으로) 분담하는 모델이라면, 미국은 고통이 집중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인간 품격을 유지해주는 수단이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개인의 품격이 자본주의 모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이동제한 조치로 한산한 개선문 앞. /사진=afp8

1. 실업을 막기 위해 월급 대신 주는 북유럽

클라우스 비스테슨 유로존 경제학자는 “유럽대륙의 노동시장은 미국과 다르다. 유럽에선 기업이 노동자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정부 지원제도를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① 독일

단축 근무를 하는 대신 줄어든 급여의 60%(자녀가 있으면 67%)를 국가가 부담하는 '쿠어쯔아르바이트'(Kurzarbeit)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대량 실업을 겪은 후 만든 정책이다. 독일 정부는 각 기업들에 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고 이를 위해 260억 유로(30조 원) 규모 예산을 책정했다.

3월에만 47만 개 회사가 프로그램을 신청했고 독일 정부는 올해 말까지 전체 기업의 25%가 신청해 30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2009년 금융 위기 때도 15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 제도의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당시 실업률은 7.9%까지 치솟았다가 6%대로 떨어졌다. 

② 덴마크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 3개월 동안 월급 75%(시급 노동자의 경우 최대 90%)를 1인당 2만3,000덴마크크로네(약 413만 원) 한도 내에서 정부가 지급하기로 했다. 만약 인건비를 제하더라도 기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장을 닫을 수밖에 없는 기업은 추가로 지원한다. 소요되는 예산은 약 426억덴마크크로네(7조6,544억 원). 덴마크 경제위원회 위원장인 칼-요한 달가드 코펜하겐대 교수는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정부가 도와 파산과 해고를 막는다면 좀 더 빨리 정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 노르웨이

덴마크처럼 월급 일부를 정부가 지급한다. 먼저 20일 동안 100% 유급 휴직이 보장된다. 처음 이틀 치는 기업이, 나머지 18일 치는 정부가 부담한다. 이후부터는 월급의 80%를 연 2만6000유로(3,500만 원) 한도 내에서 정부가 지급한다. 트뤼그베 슬락스볼 베둠 노르웨이 중앙당 대표는 자코뱅매거진에 "(코로나) 부양 패키지는 아주 비싸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④ 프랑스

프랑스 정부는 '쇼마주 파르티엘'(임시 실업) 제도를 통해 사업장 폐쇄 등으로 노동자들이 일하지 못하는 동안 월 5,404유로(726만 원) 한도 내에서 순급여의 84%까지 지급해준다. 최저임금인 월 1,201유로(161만 원)를 버는 사람에겐 100%가 지급된다. 임시 실업 기간이 끝나면 노동자들은 대부분 재고용된다.

⑤ 이탈리아

‘긴급상황’ 관련법을 통해 정부 사회보장국이 노동자들의 급여 일부를 보전한다. 고용주가 주 정부에 신청하면 일시 실업 상태에 놓인 직원들이 사회보장국으로부터 급여 일부를 받을 수 있다. 보장 기간은 최대 연속 13주다.

⑥ 영국

영국의 자본주의는 원래 미국 모델에 가깝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고용 유연성을 우선해왔으나 최근 유례없는 대규모 해고 위기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고용을 유지하는 고용주에게 근로자 임금의 최대 80%(월 최대 2,500파운드)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보조금 지급 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영국 정부가 노동자 임금을 지급하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 쏟아지는 실업자에 수당 지급하는 미국

이미 미국은 실업 대란이다. 이대로라면 사상 초유의 실업 사태가 불가피하다. 3월 셋째 주(15~21일)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328만3,000건으로 전주 대비 12배 급증했다. 코로나 피해가 반영된 첫 주에만 300만 명이 추가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미 CNBC에 따르면 3월 중 40여 개 스타트업에서만 4,000명이 해고됐다. 42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미 유통업체들도 일시 해고, 무급 휴가 등 인원 감축에 돌입했다. 의류업체 갭은 미국과 캐나다 직원들의 급여 지급을 보류했고, 메이시스 백화점은 12만5,000여 명 직원 중 대부분에 대해 무급 휴직을 실시하고 있다. 

유럽이 공장폐쇄나 영업 중단을 하면 월급의 60~80%를 정부가 대신 지급하고 봉쇄조치가 끝나면 일터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반면, 미국은 ‘우선 해고 – 사후 실업수당’이다. 그러니 대규모 실직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미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보고서에서 이번 사태로 4,7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이 경우 실업률이 32.1%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최고 실업률 24.9%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실업수당과 함께 2조2,000억 달러(약 2,70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통해 전 국민에게 1인당 1,2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실직자들의 대규모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기지 상환, 각종 공과금, 신용카드 청구서가 매달 초 날아오기 때문이다.



3. 자본주의 모델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정리하면 유럽모델에서는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가 개인을 책임져준다. 하지만 미국의 자유주의 모델에서는 최소한의 수당을 빼면 각자도생이다. 한쪽은 고부담이기 때문에 고복지이고, 한쪽은 저부담인 대신 각자도생이다.

그런데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바이러스로 인한 엄청난 위기를 맞아 지금과 같은 모델은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뉴욕타임스의 이런 지적이다. "(대규모 부양책은) 효과가 미약할 수 있다. 주식시장 붕괴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에 따른 갑작스러운 소비침체에 어울리는 해결책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 지금 필요한 것은 경기 부양이 아니라 피해 구제다. 정부가 개입해 월급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파괴적인 실업 사태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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