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남자 직원이 있었다.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고 결론을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않아 회사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에게 "결론부터 말하고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세요"라는 피드백을 주곤 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직원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인기가 많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누나들 사이에서 자라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술 없으면 10분도 대화가 안 되는 일반적인 아저씨들과 달리 술 한잔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몇 시간씩 대화가 가능했다.

대개 조직에서 일을 잘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결론과 핵심만 듣고 빠르게 판단하기’ ‘비용효과 계산으로 대안중 최적을 선택하기’ ‘감정이나 불필요한 일에 시간 소모하지 않기’ ‘논리로 접근하기’ ‘간결하게 정리하기’ ‘솔루션을 만들어 내기’ 등의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즉 최소의 시간으로 철저한 논리를 활용하여 가장 빠른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에 익숙하고, 직원들과 짧고 명료한 대화를 하며, 의사결정을 하고 지시하고 가르치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사람들이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엉망이 되곤 한다. 자녀나 부모, 자매, 형제, 배우자나 애인이 이런 방식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들은 직장동료나 직원들이 아니다.

자녀가 “짜증 나”라고 하고 배우자나 애인이 “나 힘들어”라고 할 때, “결론이 뭐야” “대안이 뭐야” “요점이 뭐야” 이런 답변이 통할 리가 없다. “짜증 나면 나가 놀아” “힘들면 잠을 더 자” “아프면 약 먹어” 이런 '솔루션' 중심의 대화 방식도 통할 리가 없다.

직장에서는 쌩쌩 날고 존경받는 사람이 집에 가면 '독재자' '짜증남' '무심남' '이기주의자'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 '인정 없는 사람' '권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중인격자'로 비판받기도 한다. "저 사람은 밖에서는 멋져 보이지만 다 가짜야" "아빠는 위선자야." 기업 경영자뿐 아니라 목사, 교사, 변호사 등 전문가 중에도 이런 분이 적지 않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면 그가 위선자이고 이중인격자인가? 꼭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중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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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와 사적 생활에서는 통하는 법칙이 다르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효율'보다 '낭비'가 때로 필요하고, '답'보다 '공감'이 필요하고, '똑똑함'보다 약간 '바보스러움'이 필요하다. '결론'보다 '과정'이 필요하고, '지시'보다 '함께함'이 필요하다. '냉정함'보다 '따뜻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능력 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집안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과거와 달리 회사생활에서조차 후자의 필요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리더들은 회사 일만 멋지게 하는 데서 벗어나 균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때로 낭비하고, 비효율을 추구하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태도를 꺼내어 써야 본인뿐 아니라 주위도 행복할 수 있다.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보다 훌륭한 부모, 훌륭한 친구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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