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우)와 크리스 쿠오모 CNN 앵커. /사진=CNN '쿠오모 프라임타임' 방송 캡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우)와 크리스 쿠오모 CNN 앵커. /사진=CNN '쿠오모 프라임타임' 방송 캡처

얼마 전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CNN의 인터뷰 영상이 있다. 


앵커가 뉴욕 주지사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주지사님, 뉴욕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신 건 알겠는데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할 시간은 있을 텐데요." 그러자 주지사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참,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아들이 저라고 하시더군요.” CNN 간판 앵커인 크리스 쿠오모(50)와 그의 형이자 뉴욕 주지사인 앤드루 쿠오모(63)가 벌인 '엄마는 날 더 좋아해' 설전이었다. 쿠오모 지사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뉴욕주 검찰총장 등을 지냈다.

뉴욕주 코로나 확진자 수는 9만2,381명(4월 2일 기준). 뉴욕이 '제2의 우한'이 돼가는 엄중한 시국에 황금시간대 뉴스에서 농담 따먹기가 웬 말인가 싶지만, 지금 미국에서 쿠오모 주지사의 치솟는 인기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시에나칼리지 조사에 따르면 뉴욕 주민의 87%가 쿠오모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텅 빈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afp
텅 빈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afp

사람들이 쿠오모 주지사에게 코로나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단 믿고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신들은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일일 브리핑'의 영향이 크다고 평가한다. 

쿠오모 주지사는 지난달 10일부터 매일 뉴욕주 코로나 현황과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데 기자들로부터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까지 생중계한다. 하루에 몇 번을 할 때도 있다. 그의 브리핑이 인기를 끌면서 뉴욕주를 넘어 미 전역으로 방송되고 있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연설 대신 쿠오모의 브리핑을 방송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미 경제매체 패스트컴퍼니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프레젠테이션에 이토록 열광한 것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 이후 처음"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하나는 비즈니스이고 또 하나는 위기 대응이라 결이 다르지만,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고 공감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쿠오모 주지사의 프레젠테이션은 잡스에 비견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4월 1일 브리핑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4월 1일 브리핑

1.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와 팩트다.
 
쿠오모 주지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숫자'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공개할 수 있는 수치는 모두 공개한다. 확진자, 사망자, 중환자, 퇴원자 등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일주일 추이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디자인은 최대한 단순화해 가독성을 높이고 숫자를 함께 보여준다. 막대그래프, 선 그래프, 파이 그래프, 표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코로나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에게 최선의 정보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팩트입니다. 팩트는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됩니다. 내가 우리 팀에 늘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나는 당신 의견을 귀담아듣지만 그건 두 번째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팩트입니다. 그러니 일단 당신 의견에 물들지 않은 팩트를 가져오세요’.”
(쿠오모 뉴욕 주지사, 2020.4.1, 일일 브리핑)
 
미래의 숫자를 예상할 때도 철저히 팩트를 기반으로 한다. 뉴욕주는 맥킨지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매일 업데이트 되는 수치를 넘겨 예측 모델을 수정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 지난달 1일에는 무려 한 달 뒤인 4월 말에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3월29일 일일 브리핑. /사진=CBSN 뉴욕 방송 캡처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3월29일 일일 브리핑. /사진=CBSN 뉴욕 방송 캡처

2. 통보가 아니라 이해를 하도록 한다.

쿠오모 주지사는 이런 수치를 기반으로 대책의 필요성을 쉽게 풀어 이해시킨다. 마치 공중보건 강의를 한 편 듣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를 설명할 때도 "당분간 사람들과 만남을 미루고 집에 머무르라는 뜻'이라며 다시 한번 풀어 설명한다. 
 
산소마스크 추가 확보 필요성을 설명할 때는 ① 산소마스크가 무엇인지 ② 몇 개가 필요한지 ③ 왜 필요한지 ④ 예산이 얼마나 필요한지 ⑤ 부족하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말한다. 그는 일반 환자는 산소마스크 착용 기간이 평균 3~4일이지만 코로나 환자는 11~21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소마스크가 부족하면 손으로 눌러 공기를 주입해야 하는 백밸브마스크를 사용해야 한다며 직접 들고나와 보여주기도 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3월21일 일일 브리핑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3월21일 일일 브리핑

3. 표현은 쉬우면서도 강렬하다.
 
쿠오모 주지사는 핵심 메시지를 쉽지만 강렬한 언어로 표현하고, 이를 파워포인트에 적어 다시 한번 강조한다. 슬라이드를 따로 꾸미지 않고 기본 배경에 글만 적어둔다. 그래서 더 호소력 있다. 언론은 단 몇 분 만에 쿠오모 주지사의 메시지를 헤드라인으로 뽑아 보도하고, 소셜미디어에는 그의 메시지가 적힌 슬라이드를 캡처한 화면이 공유된다.
 
예를 들어 젊은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충분히 지키고 있지 않다고 강조할 때는 “당신은 틀렸습니다”(You are wrong)라는 문구를 파워포인트에 띄웠다.
 
초당적인 협력을 호소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붉거나 푸른 주는 없습니다. 붉거나 푸른 사상자도 없습니다. 바이러스는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공격할 뿐입니다." (There are no red states, and there are no blue states. There are no red casulaties or blue casualties. This virus doesn't discriminate. It attacks everyone.)
 


/사진=뉴욕 주 공식 홈페이지
/사진=뉴욕 주 공식 홈페이지

4.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쿠오모 주지사는 연방정부와 대립도 불사한다. 한때 뉴욕주가 우한처럼 봉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브리핑을 통해 "뉴욕주 봉쇄는 일어날 수 없다.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뉴욕주의 어떤 도시도 주 정부 승인 없이 봉쇄될 수 없으며 나는 그 어떤 도시도 봉쇄할 용의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또 "뉴욕은 우한이 아니다"라는 한마디로 트럼프 대통령의 "뉴욕주를 포함해 일부 봉쇄를 고려하고 있다"라는 발언을 9시간 만에 철회시키기도 했다.

인공호흡기 확보와 관련해서는 “50개 주가 이베이에서 산소마스크 낙찰받으려 입찰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방정부가 모든 의료용품을 매입해 필요에 따라 나눠주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의료용품을 주별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끼리 산소마스크를 뺏고 뺏기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afp
/사진=afp

5. 개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쿠오모 주지사는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사적인 얘기도 동원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이번 일은 누구도 겪어보지 못 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저는 매일 밤 딸과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딸은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이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이게 무엇을 뜻할까요. 코로나가 우리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 2020.3.26, 일일 브리핑)

공화당원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주재 대사도 트위터에 "고백, 하나. 나는 매일 쿠오모 주지사의 일일 브리핑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가 주 정부 입장을 짚어준 다음 주민들을 위로하는 방식에 쾌감마저 느낀다"고 칭찬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