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비교적 성공한 CEO 한 분을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임원들은 다 장기판의 말들이에요. 누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경영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죠. 말로 쓸 사람, 차로 쓸 사람, 졸로 쓸 사람 등을 잘 봐야 해요. 그리고 그들을 잘 움직여야 해요. 리더는 장기를 두는 것처럼 경영을 해야 해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일견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분명히 리더는 구성원들의 장점을 잘 파악해서 그에 적합한 임무를 부여하고 배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회사의 성장과 승리에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책을 읽었는데 그곳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리더십이란 체스가 아닌 정원 가꾸기와 같다. 리더는 정원사처럼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며 나무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원사는 환경을 만들어줄 뿐 자라는 것은 나무 스스로다."

이 글을 읽자 ‘아하!’라는 탄성이 나왔다. 불행히도 장기나 체스의 말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를 두는 사람, 체스를 두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리더가 리더십을 체스나 장기로 여긴다면 이는 리더 자신이 구성원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하고 지시하겠다는 의미다. 구성원들은 리더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또한, 구성원들은 체스나 장기의 말처럼 필요가 없어지거나 상대에게 패배하면 언제든 퇴출당하게 된다.

물론 '정원 가꾸기'도 리더십을 설명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분명 '체스판'보다 훨씬 나은 은유이다. 리더는 정원사처럼 환경을 만들어준다. 

구성원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땅도 갈아주고, 물도 준다. 구성원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들을 뽑아준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구성원들 스스로이다. 리더는 그들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조성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자기가 잘나서 잘 자란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 그 뒤에는 정원사의 땀과 노력이 있는 것이다.



나도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니 존경할 만한 리더들은 다 정원사 같은 리더였다. 그분들은 공통적으로 정원사가 하듯이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내게 사사건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때로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폭우가 내릴 때 정원사가 나무들을 보호해주듯이 방어해주고 대신 책임을 져주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나서 이렇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자란 것이었다.

반면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리더를 기억해보니 나를 체스판의 '말'로 여겼던 리더였다. 사사건건 간섭하려 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통제하려 했다. 내가 성과를 내어 자신을 돋보이게 해줄 때는 친절하게 대했지만, 외부의 어떤 어려운 상황이 올 때는 얼굴을 180도 바꾸어 내게 책임을 미루었다. 나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장기판의 하나의 말로 취급했음이 분명했다.

나 자신도 이를 생생하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때로 구성원들을 장기나 체스판의 말처럼 생각하거나 대한 때도 있었다. 나도 정원사의 역할을 더 하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할 뿐이다.

기업과 사회의 더 많은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정원사의 마음으로 대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분명 우리의 기업과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해지고 튼튼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