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수'로 바둑 팬들 웃고 울린 마지막 바둑천재

기계의 영역이 된 바둑. 인간의 바둑을 떠나보내며 ③ 이세돌.

이세돌의 마지막 은퇴 대국은 AI '한돌'과 3차전으로 진행되고 있다/사진=NHN

지난 19일. 바둑 인공지능 '한돌'과 2국에서 패한 이세돌은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 위의 돌을 이리저리 옮겼다. 홀로 중얼중얼 하던 이세돌은 감독관석을 바라봤다. 감독관으로 앉아있던 백대현 9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둑에 있어 '복기'는 오늘의 한 판을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학습이었다. 일종의 오답노트 정리였고, 그 오답노트는 나를 이긴 상대와 함께 만들어 간다. 승리한 기사는 기뻐하기 이전에 상대와 열과 성을 다해 복기에 임해줬다. 승리한 기사라 해도 모든 수가 완벽하진 않기 때문에 자신이 실수한 곳, 자신이 어려웠던 장면을 상대와 의견을 나누며 공부한다. 복기는 몇 분이 걸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기도 한다.

한돌과 대국 후 홀로 복기하는 이세돌의 모습은 외로워보였다. 이세돌의 복기를 도와준 사람은 경기 후 이세돌을 위로하러 들어 온 친형 이상훈 9단이었다. 왜 그런 수를 뒀는지, 내가 저지른 실수는 뭐였는지, AI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알파고를 이긴 78번째 '신의 한 수'

인공지능을 딱 한 번 이겨본 3년 전 알파고와의 4차전. 알파고에 오류를 일으킨 78번째 수를 '신의 한 수'라고 부른다. 이후 많은 기사들이 이세돌의 한 수를 복기해 본 결과 그 수는 사실 이세돌의 죽어있던 돌을 살릴 수 있는 수는 아니었다. 단, 만약 알파고가 오류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하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했던 것은 맞았다고 한다.

이세돌이 '천재'라 불리는 이유도 '신수' '묘수'를 많이 두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복잡한 전투 속에서 이세돌만이 생각할 수 있는 신수가 두어지면 상대 기사는 당황해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세돌의 대국에서 해설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이 수가 되는 수인가요? 제가 뭘 잘못 본거죠?"라는 자문이다. 그 해답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몇날 며칠이 걸린 복기 끝에야 결론이 내려진다.

이세돌 9단의 묘수는 이창호 9단과 달리 복잡하다. 그래서 묘수를 알아채는데 시간이 걸린다. 

''저게 묘수였구나''라는 걸 나중에 지나보면 알게 된다.

김성룡 9단

알파고를 꺾고 의기양양했던 모습의 이세돌/사진=머니투데이


전성기 이창호와 대등하게 싸웠던 '바둑 천재'

이창호와 이세돌은 지금껏 70번 맞붙었다. 이창호가 36승34패로 근소하게 앞서있다. 이세돌이 첫 우승을 거두며 두각을 나타난게 2000년. 이창호의 실력이 여전할 때였는데도, 이세돌은 맞대결에서 늘 호각을 이뤘다.


이세돌은 조훈현, 이창호만큼 많은 타이틀을 가져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사와 비견되는 데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2009년 휴직 사건이다. 최전성기를 달리던 이세돌은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선언하며 바둑계와 불화를 겪었다. 이세돌 징계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는 고심 끝에 한국기원에 휴직계를 냈다. 이후 은퇴 이야기도 나왔지만 다행히 6개월만에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다. 최전성기에 휴직계를 낸 이세돌은 복귀한 뒤 이전만큼 꾸준하지 못했는데, 만약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이세돌도 조-이 두 천재의 기록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렸을 것이라는 게 하나의 이유다.

두 번째는 이세돌의 기풍이다. 

이창호가 장기간 군림하면서 바둑 기사들은 이창호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더 두텁게 두고, 끝내기를 중시하는 기사들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박영훈 9단은 ''제2의 이창호''로 불리며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런데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세돌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이세돌에 열광했다.

한해원 3단

이세돌의 기풍은 조훈현에 가까웠다. 매우 공격적이서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발 빠르게 두면서 이곳저곳에서 싸움을 걸고, 마지막에 모든 걸 수습하는 스타일. 치열한 싸움 속에서 '신수'가 터져나왔고, 바둑팬들은 그의 바둑을 보며 열광했다. 

아울러 중국 바둑의 가파른 성장 속에서 중국 기사를 압도하는 기사가 이세돌밖에 없었으니, 그는 한국 바둑의 마지막 자존심이기도 했다.

이세돌의 바둑은 중국을 압도했다/사진=한국기원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생겼다"

요새 젊은 기사들은 아예 인공지능의 수들을 다 외우고 다닌다.

송혜령 2단


잘 두는 기사일수록 인공지능처럼 두는 기사들이 많다. 기풍이 없어지고 인공지능처럼 둔다.

유창혁 9단


이런 흐름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해왔던 이세돌 9단에게는 자존심의 상처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둑계에서는 알파고 대결 이전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자부해왔다. 체스든, 장기든 딥러닝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지만, 바둑만큼은 알파고 이전에 그 어떤 프로그램도 프로기사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딥러닝이 발전되면서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기 시작했고, 계산 싸움인 바둑에서 인간을 압도했다. 

만약 나보다 엄청난 고수가 나타나서 그분에게 배운다면 당연히 기쁘게 배울 것이다. 그런데 AI가 왜 그렇게 두는지는 프로그래머도 모른다.

이세돌,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바둑 둘 때의 총 경우의 수는 '361!=361x360x359x358x.....x2x1=???'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있다. 그래서 이제껏 단 한 번도 같은 바둑이 두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고 제로는 스스로 490만 판을 며칠 만에 뒀다. 시간만 좀 더 주어진다면 인간이 여태껏 두었던 모든 바둑 대국보다 더 많은 대국을 둘 수 있을지 모른다.

"바둑을 예술로 배웠는데 이제는 단순한 게임이 돼버렸다"는 이세돌의 한탄은 이 때문이다. 두 명의 바둑기사가 몇날 며칠을 고민해 만들어낸 한 개의 좋은 기보, 다음엔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방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던 상대와 함께 복기하며 서로의 스승이 되어줬던 바둑의 '예와 도'. 이제는 컴퓨터에 의해 몇 분 만에 뚝딱 기보가 만들어지니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세돌은 은퇴의 첫째 이유로 AI를 꼽았다/사진=뉴스1


AI와 함께 만들어가는 바둑


알파고가 인터넷 바둑을 통해 세계 최고수들과 총 60판을 둬서 모두 이겼다. 여기서 알파고가 주로 쓰는 몇 가지 수법이 나왔다. 그런 것들을 따라해 보고 포석에서도 알파고가 두는 것을 많이 따라둔다.

서건우 7단, 뉴시스, 2017.5.25

김미리 4단은 바둑 해설 도중 "예전에는 기사들끼리 연구회를 만들어서 함께 연구하는 문화였는데, 요새는 몇몇 기사끼리 모여서 컴퓨터를 놓고 AI를 보면서 연구한다"고 말했다. 이세돌 이전 세대에게 AI가 '씻을 수 없는 치욕'이라면, 젊은 기사들에게는 '보고 연구할 수 있는 교재'가 된 것이다.

AI는 새로운 수를 둘 뿐, 왜 그 수를 두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AI를 만든 프로그래머조차 해석하지 못한다. 그걸 해석해내는 것이 역시 사람의 몫이고 바둑 고수들만이 할 수 있다. 

이미 사람과 AI가 함께 참여하는 바둑 대회도 생겼고, 사람과 AI가 편을 먹고 겨루는 대회도 생겼다. 바둑 프로기사와 AI가 함께 편이 되면, 이세돌과 한돌의 1국에서 나왔던 AI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치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가 사람의 뇌를 컴퓨터와 결합해 업그레이드 하려는 시도가 이미 바둑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의 영역이었던 바둑은 이제 AI의 영역이 됐다. 그렇다고 바둑이 이제 인간에게 의미 없어진 것은 아니다. AI로 인해 인간 바둑은 더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 인간이 다시 AI와 대등하게 두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현역 최고수라는 박정환 9단의 한 마디는 인간 바둑이 이세돌 이후의 시대로 나아갈 준비가 됐다는 의미 아닐까? 

현 인간 바둑 최강자인 중국의 커제(왼쪽)와 박정환(오른쪽). 커제는 알파고에게 패한 이후 "AI는 인간이 바둑으로 주는 즐거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요새 AI 바둑을 주의깊게 보고 있다. 그동안 AI(딥젠고)에게 많이 배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통해 프로기사들이 많이 배우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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