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급의 계산력을 갖췄던 신산(神算) 이창호

기계의 영역이 된 바둑. 인간의 바둑을 떠나보내며 ② 이창호

바둑 역사상 최고의 기사 이창호(왼쪽)와 천재 이세돌(오른쪽)/사진=한국기원

지난 8월 중국 산둥성에서는 '2019 중신증권배 세계 인공지능(AI) 바둑대회'가 열렸다. 올해로 3회째다.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벨기에에서 14개 팀이 참가했는데, 첫 참가한 한돌은 3위에 올랐다.

AI의 기술력을 겨루는 이 대회가 이제는 바둑 최강을 가리는 ‘신들의 대회’가 됐다. 12위에 머문 국내 AI '돌바람'조차도 박정환과 커제를 꺾은 실력자다.

그러나 이들이 두는 바둑에서는 인간 바둑에서 볼 수 있는 개성이나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어느 AI가 더 정확하게 계산해 승리하는지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4강전부터는 3판을 먼저 이기는 AI가 승리하는 방식이었는데, 4강전과 결승전이 모두 3대0으로 끝났다. 인간 바둑의 웃고 울리던 역전 드라마나 라이벌 구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 AI바둑의 최강자 중국의 절예/사진=텐센트

두는 사람의 성격까지 보여주는 '기풍'

신산(神算·귀신같은 계산), 강태공, 돌부처, 삼중허리. '바둑의 신' 이창호를 지칭하던 말들이다. '제비' '전신'(戰神)이라 불리며 빠르고 공격적인 스타일의 스승 조훈현과는 정반대다. 무색무취의 AI와 달리 인간의 바둑에는 각자의 스타일이 있었다.

∘바둑판 중앙의 거대한 집을 노리는 ''우주류'' = 다케미아 마사키
∘실리를 중요시 하는 ''지하철 바둑'' = 고바야시 고이치
∘두터움을 중시하는 ''이중허리'' = 린하이펑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어뜯는 ''독사'' = 최철한
∘상대를 처참히 부숴버리는 ''쎈돌'' = 이세돌

보통 '공격적' '실리적' '두터움'과 같은 스타일과 관련된 별명이 붙는데 이창호는 '정확한 계산'과 관련된 별명이 많았다.

김성룡 9단은 이창호 경기를 해설할 때, 이창호가 강하게 두지 않고 조금만 물러서면 이렇게 말한다.

"이미 계산서가 뽑혔나보네요. 세게 안 둔다는 것은 이창호가 유리하다는 겁니다. 이미 경기가 끝났다는 거죠. 이건 이창호만 볼 수 있는 계산서입니다."

이창호는 유난히 반집승이 많았다. 역대 64번 반집승을 거둬 국내 1위,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세돌 9단(24회, 10위)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한다.

프로기사라 하면 대부분 집계산을 잘하지만 대국 중반부터는 자신의 최선의 수와 상대의 최선의 수를 감안해 누가 반집 이길 것인지 까지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반집은 '신의 영역'이라 불렸고 이창호는 '신'급의 계산력을 보유한 '신산'이라 불렸다.

바둑의 스타일, 즉 '기풍'은 바둑 기사의 성격과도 맞닿아있었다. 바둑판 위에서 동에 번쩍 서해 번쩍하던 조훈현은 대국 중에 담배도 많이 피우고, 상대가 거슬릴 정도로 다리를 심하게 떠는 버릇이 있었다. 바둑 보급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제자 이창호는 어린 시절부터 말이 없고 묵직했다. 아무리 이겨도, 혹은 패배해도 표정 하나 변화가 없었다. 

이 정도의 미소가 이창호에게는 함박웃음이다/사진=LG배세계기왕전

싸우지 않고 이겼던 이창호

이창호의 정확한 계산은 끝내기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바둑은 초반, 중반, 후반을 '포석-중반-끝내기'라 부르는데, 현대 포석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우칭위엔이라면 끝내기의 중요성을 알게 해준 것이 이창호였다. '끝내기에서 잘해봤자 고작 한 두집 차이'라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결국 한 두집의 승부를 가르는 것이 끝내기'로 바꿨다.

이창호가 끝내기에 강하게 된 것은 스승 조훈현의 영향이 컸다. 조훈현은 바둑판 전체에 다이너마이트를 넓게 뿌려 놓는 기풍이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이 다이너마이트가 한줄로 연결되고 바둑판 전체에서 '펑'하고 터진다. 상대는 정신없이 당하고 만다.

조훈현을 이겨야 했던 이창호는 초반부터 단단하게 성벽을 쌓는 방법을 택했다. 저렇게 꼼꼼히 두면 언제 바둑판 전체에 힘이 미칠까 싶지만 성벽은 더 높게 쌓이고 이창호는 그 두터움을 바탕으로 천천히 바둑판 전체를 지배해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바둑은 마지막에 가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선생님과 그날의 대국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홀로 되새기는 과정에서 바둑은 실수를 적게하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싸움을 피했던 것은 싸움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창호, <이창호의 부득탐승>


그래서 이창호와 상대했던 기사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분명 불리한 적이 없었던 바둑인 것 같은데 마지막에 보면 졌다는 것.

이창호랑 바둑을 두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한 것 같은데, 바둑은 언제나 불리하다


루이나이웨이 9단


한편으로 이창호의 바둑은 AI와 유사한 면이있다. 바둑은 '기세'를 중요시하는데, 기세를 타지 않고도 승리했던 기사가 이창호다. 이세돌과 붙었던 '알파고 리'도 피할 수 있는 싸움은 최대한 피했다. 경우의 수를 복잡하게 만드는 게 결코 유리하지 않았기 때문.

물론,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누구보다도 정확한 수읽기로 전투에서도 승리했던 이창호였다.

중국의 1인자였던 창하오(오른쪽) 9단은 한동안 이창호만 만나면 패하는 징크스에 시달렸다/사진=한국기원

바둑전성기에 세계를 지배한 이창호

이창호의 전성기가 곧 한국 바둑의 전성기, 세계 바둑의 전성기였다. 조훈현이 만든 바둑붐 덕에 국내, 세계 대회가 빠르게 늘어났다. 이창호가 보유했던 우승 타이틀이 1993년 12개, 94년 11개, 95년 12개. 스승 조훈현이 국내 전관왕을 달성하던 당시, 국내 대회가 5~6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그런 와중에 이창호가 올린 성적은 '독재'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창호의 압도적인 힘을 대변해주는 대회가 있었는데 국가대항전인 '농심배'다. 

한중일 3개 국가에서 최고의 기사 5명씩 출전한다. 첫날 한중 대결에서 한국이 조훈현을 내보내 이기면 다음날에는 일본이 나와 한국의 조훈현과 붙는 연승방식이다. 국가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라 당대 최고수가 총출동한다. 

2005년 제 6회 농심배. 한국은 출전했던 4명의 선수 중 최철한이 단 1번 이겼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출전하자마자 다 패했다. 한국에 남은 선수는 이창호 뿐. 일본에는 2명, 중국에는 3명의 선수가 남아있었다. 당시 이창호는 세계 1인자 자리에서 내려온 뒤였다. 한해 승률도 70% 남짓. 반면, 중국은 선수층이 두터웠다.

1회~5회 대회까지 한국은 모두 우승했다, 이번만큼은 한국이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그 순간, 이창호는 남은 5명의 중-일 선수를 모두 꺾고 한국에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게 된다.

단체로 겨루는 연승식 국가대항전이라는 구조는 나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는 책임에 대한 강박이 심한 편이다. 중요한 국가대항전 승부에서 패배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내 귓가에는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제발, 포기하지 말아줘''라고 외치는 간절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창호, <이창호의 부득탐승>


최고의 수문장 이창호덕에 한국은 '농심배'에서 6년 연속 우승했다/사진=한국기원

바둑도 결국 체력

워낙 압도적인 바둑을 보여주던 이창호였기에, 이창호만큼은 스승 조훈현보다도 더 오래 정상급 실력을 발휘할 것이라 예측됐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들어 거짓말처럼 추락했고, 이제는 한해 승률 5할도 거두기 힘든 평범한 기사가 됐다. 정확했던 계산에서 오류가 나기 시작하니 '버티고 버티던' 그의 기풍마저 바뀌었다.

어린 나이부터 몸을 혹사했기 때문인데, 20대 후반부터 바둑을 둘 때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더니 편두통에도 시달리고, 급격한 체력저하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큰 승부를 치르는 날에는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실신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머리를 가장 많이 혹사시키는 직업으로는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프로기사기에 두통이란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고 나의 두통 역시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창호, <이창호의 부득탐승>

한 때 세계 바둑을 호령했던 서봉수(왼쪽), 조치훈(왼쪽 2번째), 유창혁(오른쪽 2번째), 이창호. 이제는 시니어 바둑 대회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AI같은 정확한 계산을 보여주던 이창호도 결국은 세월의 풍파를 버티지 못하고 스러졌다. 이창호뿐 아니라 천재라 불리던 수많은 선배 바둑기사들도 결국은 나이가 들고, 체력이 부치고, 머리가 둔해지면서 후배 바둑기사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런 면에서 바둑도 결국 다른 스포츠와 다를 것이 없다. 심리전도, 자존심도, 체력도 모두 승부의 한 요소인 인간의 바둑은 그래서 AI의 바둑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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