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알트만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트업 교사 가운데 한 명이다. 2014년부터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을 키워낸 창업사관학교 Y콤비네이터(YC)의 교장선생님 역할인 CEO를 맡아왔다.

 

새로운 스타트업 양성프로그램도 속속 도입했다. 10주짜리 YC 프로그램에 ‘입소’하려는 스타트업은 6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는데 무료 ‘온라인 스타트업 스쿨’을 열었고 구직 중인 개발자들과 Y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인턴십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샘 알트만/ 사진=Y콤비네이터
샘 알트만/ 사진=Y콤비네이터

동시에 그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비저너리 가운데 한 명이다. 몇 가지만 보자.

 

① 기본소득 실험 : YC는 2016년 하반기부터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가구에 조건 없이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➁ 트럼프 감시 : YC는 트럼프 공약의 진행 상황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을 담은 '유나이티드 슬레이트'를 발표하고 유사한 공약을 가진 정치인이 있다면 적극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③ 빈곤 해결하는 도시건설 : ‘Y-City’라는 도시프로젝트도 발표했는데 주거비를 낮춰 저소득층도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태양광 에너지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이 집을 짓는다면 더 저렴하게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스타트업 교장’ 자리를 내놓은 이유

 

인공지능 등 기술이 가져올 일자리 박탈, 부의 집중의 문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비전이다. 그런데 최근 알트만이 YC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사회 회장직만 유지하기로 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사퇴한 이유이다. 그는 2015년 엘론 머스크와 함께 설립한 비영리단체 오픈AI(OpenAI)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샘 알트만(왼쪽)과 엘론 머스크(오른쪽)/사진=Youtube
샘 알트만(왼쪽)과 엘론 머스크(오른쪽)/사진=Youtube

오픈 AI는 인공지능이 소수에 의해 상업적으로 악용되면 사회에 해악이 될 것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설립됐다. 목표는 인류에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 인공지능기술이 특정회사에 종속되지 않도록 개발한 기술은 오픈소스로 공개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발전을 피할 수 없다면 더 윤리적으로,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선수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인공지능 기술발전의 경로를 '선하게' 설정해놓자는 것이다. 현재 엘론 머스크는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인 테슬라와의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2018년 2월 오픈AI 이사회를 떠난 상태이다.

 

이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픈AI가 일반기업보다 더 빠르게 인공지능 기술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 알트만의 판단이다. 이미 구글 알파벳의 AI 자회사 '딥마인드'는 2017년에만 4억4200만 달러(약 5007억 원)를 투자했고 직원도 700여명에 달한다. 반면 오픈AI는 2016년 기준 투자금액이 1120만 달러(약 127억 원)이고 직원은 105명.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어디까지 벌 것인지 정해놓은 회사 실험

 

그래서 알트만은 오픈AI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실험하기로 했다. 그는 2019년 3월 오픈AI의 자회사로 '오픈AI LP'(이하 LP)라는 영리회사를 설립했다. LP는 영리활동을 하지만 어느 정도 이익을 낼 것인지는 딱 선을 그었다. 알트만은 이를 'capped-profit company'(이익을 제한한 회사)라고 이름 붙였다. 기존에는 없던 조합의 단어이다. 비영리재단과 영리회사의 중간 형태인 셈이다. 오픈AI에서 일하던 대부분 직원들은 LP에도 소속돼 일하게 된다. LP는 창립선언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AI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우리는 오픈AI를 창립했을 때보다 더 빨리 성장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컴퓨팅 장비를 마련하고 재능 있는 인재들을 모집하려면 수십억 달러가 들 것이다. 우리는 자본을 유치하면서 미션도 지키고자 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법(기업) 구조로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우리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영리와 비영리의 '하이브리드' 구조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2019.3.11)


오픈AI 직원들/사진=오픈AI 블로그4
오픈AI 직원들/사진=오픈AI 블로그4

‘영리 + 비영리’ 하이브리드 회사의 구조

 

알트만은 LP를 통해 미션과 이익을 조화하는 모델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세운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투자를 받지만 100배까지만 불려준다.

 

LP는 여느 스타트업처럼 투자 라운드를 진행할 계획이다. 투자자를 만나 피치도 하고, 투자자들은 투자한 만큼 LP의 지분을 가진다. 그런데 LP가 아무리 성장하고 대박이 나도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투자액의 100배이다. 1000만 달러 투자한 투자자라면 회수하게 될 투자수익이 10억 달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는 수익은 모두 오픈AI의 계정으로 투입된다. LP가 돈을 벌면 그 돈으로 오픈AI가 인류 공동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비영리재단에 자본이 계속 투입돼야 최고의 인재들을 모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배를 약속하는 것이 여전히 너무 과하다는 지적에 대해 알트만은 첫 투자에는 그만큼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충분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다음 투자 라운드부터는 단계적으로 수익 한도를 더 낮춘다는 계획이다.

 

“100배가 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LP가 성공할 가능성이 100분의 1을 넘어설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사실 정말, 정말(very, very) 힘든 일이니까 말이다.” (샘 알트만, 2019.3.11, 레코드)

 

➁ 이익보다 미션이 먼저다.

 

LP의 제1원칙은 오픈AI의 미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 투자자들을 위한 수익창출보다 오픈AI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LP의 모든 투자자와 직원은 투자수익에 손해를 보더라도 오픈AI의 헌장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에 사인을 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사인해야 하는 서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픈AI의 미션은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의무에 앞선다. 수익을 내지 못해도 오픈AI는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 오픈AI는 LP의 현금흐름을 연구개발 등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그래서 회사 구조도 오픈AI의 이사회가 LP를 통제하도록 설계했다. 영리적인 결정을 비영리재단에서 내리게 된다는 뜻이다. 



③ 영리적 결정은 지분 없는 이사들이 내린다.


LP의 이사회에 투자자들도 참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회사의 지분을 가진 이사가 이사회의 과반을 넘을 수 없다. 또 배당이나 수익배분 등 투자자들의 이익과 오픈AI 미션이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분을 가진 이사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테크크런치는 “이론적으로 금고 열쇠는 금고를 털어도 금전적 이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리보다 미션을 우선하는 회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LP가 아직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것인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또 영리를 추구하는 LP의 설립 자체가 이미 오픈AI의 미션과 창립목적을 훼손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영리와 비영리가 충돌할 때 기업은 결국 영리를 따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션도 지키고 수익도 추구하겠다는 것이 지속가능한 기업의 형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알트만은 적어도 어떤 회사의 독점적 기술이 다수의 삶을 침범한다면 CEO로서 그것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 책임감 있는 일인지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LP에 그런 질문을 던져주는 존재가 바로 오픈AI라는 것이다. 알트만은 다른 회사도 따라할 수 있도록 LP의 정관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이 투자를 해도 '대박'을 기대하기 어렵고, 영리와 비영리가 충돌할 때는 비영리의 손을 들어주며, 돈을 벌어 인류에 도움이 될 인공지능기술을 개발해 공개하겠다는 하이브리드 회사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최고의 스타트업들을 키워낸 스타트업들의 스승이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 회사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투자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알면서도 잘못된 회사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투자 방식이 훨씬 성공적일 것이라 본다.” (2018.12.10, 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