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더 받으려면 어떻게 하죠?” ‘일반인 쿠팡맨’을 어떻게 볼 것인가

쿠팡플렉스, 아마존플렉스의 함정 ‘플렉스’


쿠팡 플렉스 지원 페이지. /사진=쿠팡플렉스

1. 일자리 구하기 힘든 시대, 이보다 좋은 일거리가 없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자리가 있다. 쿠팡이 2018년 8월부터 시작한 쿠팡플렉스(flex). 일반인들이 자신의 차로 물품을 배송하는 일자리다. 경력 제한 없고 일할 날짜와 시간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플렉스’이다. ‘플렉서블(flexible·유연한)’의 줄임말이다. 정규직인 쿠팡맨과 사실상 업무는 동일한데 쿠팡맨과 구별해 ‘쿠팡플렉서(Flexer)’라고 부른다.

수입은 배송 1건당 기본 750원. 배송물량이 급증하거나, 심야배송의 경우 1건당 2000~3000원까지 주기도 한다. 쿠팡은 1시간당 3만 원 이상 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루 3~4시간 일하면 평균 50~60개를 배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쿠팡은 지원 사이트에 ‘역대급 가성비 (일자리)’라고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에도 3시간 일해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25만원 벌었다는 후기가 넘쳐난다. 최근까지 쿠팡플렉서로 등록한 사람만 누적으로 30여만 명. 직장인, 취업준비생, 자영업자, 경력단절여성, 은퇴자 등 다양하다. 시간 대비 수입이 괜찮아 만족도도 높고 이 때문에 일감을 많이 받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일자리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전망이다. 쿠팡은 2019년 상반기부터 음식배달 서비스(쿠팡이츠)를 본격화할 계획인데 배송을 쿠팡플렉서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2018년 국내에 진출한 ‘우버이츠’는 이미 일반인들이 식당에서 음식 받아 배달하고 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가 시범서비스를 중단하긴 했지만 ‘카풀’까지 시작되면 아침에는 카풀, 낮에는 쿠팡플렉스, 저녁에는 쿠팡이츠나 우버이츠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근무시간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고, 여러 군데 뛰면 웬만한 직장인만큼 벌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거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다.

/그래픽=신원빈 디자인기자
2. 이런 일자리의 정체 → ‘geek’이 만드는 ‘gig’

긱(geek)과 긱(gig)은 한국어로는 같은 표기이지만 영어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geek’은 괴짜라는 뜻으로 ‘실리콘밸리에는 긱들이 넘쳐난다’ ‘긱들이 만드는 혁신적 IT서비스’라고 할 때의 ‘긱’이다. 반면 ‘gig’은 임시직이라는 뜻이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들이 연주자들과 단기계약을 맺고 공연을 하게 한 뒤 일당을 주는 고용형태에서 유래했다.

최근 많이 회자되는 ‘긱 이코노미’라고 할 때의 ‘긱’은 ‘geek’이 아니라 ‘gig’이다. ‘괴짜 경제(geek economy)’가 아니라 ‘임시직 경제(gig economy)’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일거리 단위로 계약하는 경제이다. 쿠팡플렉스, 쿠팡이츠, 우버이츠, 카풀 등의 일자리가 바로 ‘gig’이고 이런 일자리가 많아지면 ‘gig economy’가 되는 것이다.

193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즈는 일찌감치 ‘긱 이코노미’ 출현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바로 거래비용이론(transaction cost theory)이다. 코즈에 따르면 ‘기업’이라는 조직이 탄생하고 기업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게 된 이유가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업무와 노동자들이 흩어져 있으면 상호 커뮤니케이션 등에서의 거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업무와 노동자들을 내부화한 것이 기업이라는 조직이다. 기업의 필요 때문이지만 덕분에 노동자들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대신 관료주의적 규율이 지배하는 조직에 자신의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조직과 노동자들이 다시 분산될 수도 있다. 인터넷과 IT기술의 발전에 따른 온라인 플랫폼이 업무나 인력의 외부조달 비용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고용하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일할 사람을 모집해 소비자와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이 모든 업무를 노동자들에게 잘게 나눠서 배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맥킨지는 긱 이코노미를 “새로운 디지털 시장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근로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과 유럽에서 긱 이코노미 노동자들은 6400만 명이다.

‘geek’들이 만든 IT혁신 중에서도 공유경제와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가 ‘긱 이코노미’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내가 가진 물건이나 자산, 내게 남는 시간을 다른 소비자와 공유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내 시간을 공유하는 모델이 온디맨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온디맨드는 한마디로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즉각 대응하는 서비스이다. 사용자가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운전사가 즉시 도착하고(우버), 시간이 남으면 남의 집 가서 잔디 깎고 가구도 조립해주는(태스크래빗) 서비스 등이다. 그래서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온디맨드 서비스를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과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공유경제와 온디맨드 서비스가 만드는 일자리가 주로 ‘gig’(임시직)이다. 우버는 운전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다. 운전사가 자신의 차로 운행하든, 우버가 대여를 해주든 개인사업자이다. IT혁신으로 공유경제와 온디맨드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들은 더 편리해질 수 있지만 늘어나는 일자리는 임시직들인 셈이다. 

아마존 플렉스 지원 페이지. /사진=아마존 플렉스

3.‘Be your own boss’가 되라는 ‘플렉스’와 ‘자유’의 함정

쿠팡플렉스는 사실 아마존이 수년전부터 하고 있던 아마존플렉스를 따라한 것이다. 아마존플렉스 페이지 첫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Be Your Own Boss! 너 ‘자신이’ 보스가 되라는 것이기도 하고, 너 ‘자신의’ 보스가 되라는 것이기도 하다. ‘네 인생의 주인이 돼라’는 숱한 자기계발서의 명제와 비슷하다. 또 우버는 ‘Freedom Pays Weekly’라고 광고한다. 자유롭게 일하고 매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존플렉스, 쿠팡플렉스의 ‘플렉스(유연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버의 ‘Freedom(자유)’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말 내가 나의 보스가 될 수 있을까?

쿠팡플렉스 일자리는 개인사업자이기도 하고 일용직 근로자이기도 하다. 경계가 애매하다. 하루 단위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일용직 근로자이지만 배송 건당 돈을 받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라 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4대 보험, 최저임금 모두 적용되지 않고 사고 났을 때 책임도 애매하다. 한 노무사는 “쿠팡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해고나 인력관리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배송 물량이 많으면 사람 많이 쓰고, 물량이 없으면 채용을 안 하는, 한마디로 노동유연성을 극대화시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플렉스’라는 것이 개인 입장에서는 내 시간을 자유롭게 쪼개 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유연함일 수 있지만 회사입장에서는 극단적 형태의 고용의 유연함인 것이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온디맨드 서비스들은 한때 기업이 담당했던 복지와 위험부담을 개인이 담당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개인에게 좋을 수 있지만 일자리와 소득의 안정성을 해치면서 사회적으로는 나쁜 결과를, 그래서 종국에는 개인들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긱 이코노미가 새로운 경제현상이 될 것”이라고 했던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연구에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크루거 교수는 2016년 논문에서 “2005~2015년 긱 이코노미 종사자가 미국 전체 노동자 10.7%에서 15.8%로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논문에서 크루거 교수는 미 노동통계국 자료를 인용해 긱 이코노미 종사자 비율이 2017년 5월 기준으로 6.9%로 오히려 낮아졌다고 밝혔다. 크루거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경기침체로 노동시장이 너무 위축됐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긱 이코노미가 성장한 것으로 보였다. 구조적 변화라기보다는 불황이 심해 노동자들이 생활비라도 벌고자 잠시 ‘긱’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라면서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노동자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직업들로 다시 돌아갔다”고 말했다. ‘긱 이코노미’가 기술혁신에 따른 혁신적 일자리 형태가 아니라 불황 때 임시직 일자리로 몰리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교수는 ‘긱 이코노미’가 결국은 ‘부스러기’만 공유하는 경제를 만들며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시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소비자로서의 편리함과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의 안정적 삶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긱 이코노미는 사실 두 개의 다른 경제이다. 부유한 기업이나 부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거나 집과 같은 자신의 자산을 빌려준다. 반면 저소득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노동을 판매하게 된다. 즉 ‘긱 이코노미’는 이미 부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하고, 반대로 노동력만 가진 사람들에게는 수익을 주지 못한다. 우버 같은 기업들이 리스크를 노동자들에게 다 떠넘기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라이시 교수 페이스북 2016.5.5)

‘Freedom(자유)’도 마찬가지다. 자유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다는 전제에서 내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게 됐을 때 느끼는 것이다. 만일 안정적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긱 이코노미’에 뛰어든다면 자유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우버 등 온라인플랫폼은 막강한 데이터를 통해 ‘긱’들의 업무를 세세하게 평가하고 일당(수수료)도 다르게 책정할 수 있다. ‘조직’이라는 권력 대신 ‘데이터’라는 권력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글로벌경제 애널리스트인 라나 포루하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긱 이코노미가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권력 문제를 해소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며 “오히려 데이터 독과점으로 노동에서 자본으로 전례 없는 권력 이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차량에 하루 배송물량을 싣는 아마존 플렉서들. /사진=블룸버그

4. 문제제기 : ‘gig’은 사다리가 아니다. 쿠팡플렉스도.
멕시코 출신인 하파엘 산체스는 2002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 창문 만드는 공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5년 만에 해고됐다. 이후 물류창고 등 일자리를 옮겨 다니며 시급 9달러에 박스 포장 '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긱은 당신이 사다리를 오르게 해줄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20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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