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만 열면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세상. 뉴욕타임스의 IT분야 스타기자인 파하드 만주는 두 달 동안 모든 뉴스 앱을 끊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인 ‘샌프란시스코 클로니클’ 등 3개 신문만 매일 아침 40분씩 읽었다. 그는 최근 '두 달 간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배운 것'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스 IT 기자 파하드 만주(사진)/사진=NYT,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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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총격사건을 처음 접한 건 스마트워치 알람을 통해서였다. 모든 뉴스앱 알림을 껐지만 이 충격적인 뉴스는 어떻게든 내 삶에 파고들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 뒤 24간 동안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놓쳤다. 범인이 좌파 무정부주의자라든가, IS멤버라든가 하는 각종 가짜 뉴스와 거짓선동 말이다. 언론들은 이름이 공개되기도 전에 그를 시리아 저항단체와 연결시켰고, 버니 샌더스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까지 이 사건이 올해 18번째 교내 총격사건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퍼 날랐다. 전부 내가 놓쳐서 다행인 이야기들이었다. (파하드 만주, 2018.3.7, 뉴욕타임스)




  • 처음엔 불편했다


"기자가 종이신문 읽으라고 하는 말이 너무 빤하게 들리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은 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을 거라고? 아마 아닐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360만 명의 유료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4분의 3은 디지털로만 본다. 신문이 가장 중요한 정보창구라고 대답한 미국인은 전체 3%도 안 된다. 20대에게 신문은 가장 '덜' 중요한 뉴스 출처이다.


종이신문에는 온라인에서처럼 다양한 관점이 담기지 않는다. 버즈피드나 슬레이트 같은 매체는 종이신문을 찍지 않으니까. 워싱턴포스트조차 캘리포니아에서는 종이신문으로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종이신문을 읽는 건 외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온라인 친구들이 이 뉴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암흑 속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비싸기까지 하다. 뉴욕 외곽에 사는 사람은 뉴욕타임스를 구독하는데 한 달에 81달러(약 8만6300원)나 지불해야 한다. 1년이면 최신형 아이폰 한 대 값이다."


  • 그러나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 됐다


"그러나 하루에 한 번, 종이신문으로만 뉴스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내 삶이 바뀌어갔다. 호주머니 속에서 하루 종일 울리는 뉴스기계(스마트폰)를 끄고 나니 마치 내 목줄을 쥐고 호시탐탐 내 하루를 망치려 엿보던 괴물에게서 풀려난 것 같았다.


(뉴스를 놓쳤을까봐) 강박적으로 변하거나 불안해하는 일도 줄었다. 더 적은 시간을 들였지만 더 제대로, 폭넓게 정리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총격사건도 무분별한 속보를 모두 놓친 덕분에 그날 있었던 일을 정확하게 전달받았다.


뉴스를 읽지 않는 대신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늘어났는지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6권의 책을 읽었고, 도예 수업에 등록했다. 남편과 아빠로서도 조금 더 가족들의 말에 경청할 여유도 생겼다."


  • 뉴스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나는 뉴스 소비자로서 개인적인 역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현재의 디지털 뉴스 환경은 망가져있기 때문이다.


뉴스의 디지털화는 우리가 정보를 선별해 처리하는 과정을 망쳤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에코 챔버’(Echo-chamber·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며 한쪽에 치우친 주장을 확산시키고 증폭시키는 현상)에 갇혀버렸다. 오보는 점점 심해지고, 흑색선전에 쉽게 약해진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가짜 영상이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게 얼마나 쉬워졌는지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이제 정부나 페이스북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당신과 나 같은 독자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얘기할 수 있나?"



/사진=pexels


그래서 파하드 만주는 이 두 달간의 경험을 토대로 '제대로 뉴스를 읽는 방법'을 소개했다. 디지털 뉴스 시대 책임 있는 뉴스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진짜) 뉴스를 접해라(Get News)


"온라인에서 접하는 뉴스 중 엄청난 양이 실은 진짜 뉴스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논평(commentary)에 불과하다. 여러분이 이를 확인한다면 아마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 논평은 현상을 명확하게 보도록 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의 이해를 왜곡시킨다."(파하드 만주)


그는 1월23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업무중지)이 3일 만에 종료되던 때의 뉴스를 예로 들었다. 당시 미국의회의 여야는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제도(DACA)와 예산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공화당이 DACA 수혜 청년들(드리머)과 관련한 민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 한발씩 물러나며 위기가 봉합됐다.


뉴욕타임스 신문에는 이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와 이 과정에서 벌어진 정치적 계산과 막전막후를 정리한 해설 기사가 나란히 실렸다. 하지만 온라인에는 해설 기사에 대한 의견만 넘쳐났다.


"온라인에서는 논평이 팩트를 앞섰다. 소셜미디어를 조금만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실제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읽어보지도 않고 목소리만 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 뉴스는 다른 이의 시선으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이 그어진 채 공유된다."(파하드 만주)


커스틴 질러브랜드 트위터 이미지 캡처/사진=뉴욕타임스 사이트 갈무리


실제 민주당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인 커스틴 질러브랜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드리머들을 지켜주는데 실패한 협상결과에 깊이 실망했다. 나 역시 셧다운이 종료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예산안은 통과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트위터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드리머들을 위한 이민제도 개편안을 만들기로 합의한 전후사정은 담겨있지 않았다는 게 파하드 만주의 지적이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Not too quickly)


파하드 만주는 "적어도 2013년 그 일 이후 속보 뉴스는 완전히 망가졌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고 단언한다. 그가 말한 건 2013년 4월 있었던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


9·11 테러 이후 12년 만의 대형 테러에 미국 현지 언론들은 속보 경쟁에 눈이 멀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CNN 유명기자인 존 킹이 익명의 수사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검은 피부의 남성이 체포됐다”고 보도하자 보스턴글로브, 폭스뉴스, ABC방송, AP통신 등이 확인도 없이 속보를 내보냈다. 결국 1시간 만에 FBI가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피해자들이 나왔다. 모로코 출신 고등학생 에딘 바르훔은 군중 속에서 대회를 구경하다 찍힌 사진 때문에 미국 누리꾼들에게 용의자로 찍혔다. 타블로이드 매체 뉴욕포스트도 그의 사진을 1면에 보도했고, 경찰의 정정발표 이후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CCTV에 찍힌 용의자의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각종 매체 1면에 신원이 노출되는 등 마녀사냥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 대학생 서닐 트리파시는 심지어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로 추정됐다. 


미국 타블로이드 매체 뉴욕포스트는 사건 당시 온라인 및 지면기사를 통해 빨간색 원 안에 표시된 인물들이 보스턴테러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보도했으나 이들은 테러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사진=뉴욕포스트 사이트 캡처


"현실은 느리다.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기까지는 전문가들이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기술은 빠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그것이 오보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뉴스를 사실이라며 전달해준다. 그리고 앱과 플랫폼이 장악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뉴스 공급자들은 더 빨리 뉴스를 '푸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사실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한 설익은 알람이 마구 울리는 이유다.


내가 신문을 축복으로 여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하루 늦게 뉴스를 읽긴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내 문 앞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동안 수백 명의 전문가들이 나를 대신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확인해준다. 덕분에 나는 '이것이 혹시 터무니없는 거짓 주장은 아닐까' 걱정하는 대신 뉴스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파하드 만주)


소셜을 끊어라(Avoid social)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몇 주간 종이신문을 읽고 나서 나는 신문 그 자체가 좋았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소셜미디어가 나빴던 것이었다."(파하드 만주)


파하드 만주는 오늘날 뉴스를 읽으며 우리에게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소셜미디어를 끊는 것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설계 자체가 애초에 깊이보다는 속도에, 사실보다는 핫이슈에, 잘 분석된 뉴스보다는 노련한 선전가들의 말이 더 칭송받고 보상받는 체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반드시 종이신문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뉴스를 소비하는 의식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루에 한 번만 뉴스 앱을 본다든지, 잘 정리된 아침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식이다. 중요한 건 속보를 쏟아내는 매체보다는 깊이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매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 알람을 켜 놓지도 마라. 끊임없이 뉴스 파편들을 보내서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 뿐 전혀 인생에 필요가 없다. 만일 진짜로 큰 일이 터졌다면, 어떻게든 알게 되니 걱정하지 마라. 무엇보다 당부하건대 제발 뉴스를 읽는 주요 통로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라고 말하지 마라. 여러분들을 위해 하는 말이다."(파하드 만주)